[프로필] 설난영 여사 나이 고향 학력 및 노동운동 경력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선거가 뜨겁게 달아 오르면서 각 후보자의 배우자에 대한 관심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김문수 후보의 배우자, 설난영 여사는 흔치 않은 이력을 지닌 인물입니다. 정치인 배우자로서 격식을 앞세우기보다는 소박한 삶과 노동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중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특히 설 여사는 김문수 후보와 함께 노동운동 현장에서 만난 인연으로 시작해, 억압과 투쟁의 시대를 함께 견디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한결같은 자세로 조용히 남편을 내조해 왔습니다. 다음은 설난영 여사의 기본 이력을 정리한 프로필 표입니다.
설난영 여사 프로필
항목 | 내용 |
---|---|
이름 | 설난영 |
출생일 | 1953년 11월 24일 |
출생지 |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
직업 | 전직 노동운동가, 가정주부 |
주요 경력 | 세진전자 노조위원장, 금속노조 여성부장 |
배우자 |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
결혼연도 | 1981년 |
자녀 | 1녀 |
여성 노동운동가로서의 삶
설난영 여사는 1970년대 후반, 서울 구로공단에서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본격적인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여성 노조위원장은 매우 드문 사례였으며, 그녀는 여성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전면에 나섰습니다. 이후 금속노조 남서울지부 여성부장 등을 역임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녀는 현장에서 직접 부당한 대우와 싸우며, 연대와 저항의 가치를 몸소 실천해온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김문수와의 만남, 연애, 결혼 이야기
설난영 여사와 김문수 후보의 인연은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김 후보는 한일도루코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설 여사는 같은 노동현장의 동지였습니다. 김 후보가 삼청교육대 수배령을 피해 도피하던 중, 설 여사의 자취방에서 은신하게 되며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1981년, 두 사람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하객보다 경찰이 더 많았다는 당시 결혼식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시대의 어두운 단면이자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결혼 후의 헌신과 내조
결혼 이후에도 김 후보의 수차례 투옥과 정치 활동은 이어졌습니다. 설 여사는 홀로 생계를 책임지며 외동딸을 양육했습니다. 그녀는 오랜 시간 검소한 삶을 살면서 남편을 물심양면으로 뒷받침했습니다.
실제로 김 후보가 국회의원 3선, 경기도지사 2선, 고용노동부 장관을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부의 전 재산은 서울 봉천동 24평 아파트 한 채에 불과하다는 점은 대중에게 큰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시대 감각을 갖춘 조언자
설난영 여사는 단순히 조용한 내조자에 그치지 않습니다. 최근 김문수 후보가 공개 석상에서 언급한 "미스 가락시장" 발언에 대해 설 여사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싫어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정치인 배우자로서의 조율 능력과 현실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를 존경한다고 밝히며, "조용히 봉사하며 국민의 곁에 있는 영부인이 되고 싶다"는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결론: 시대를 함께 걸어온 동지
설난영 여사의 삶은 단지 정치인의 배우자라는 틀을 넘어, 한 시대를 함께 견뎌온 동지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녀의 소박함, 강인함, 시대를 꿰뚫는 감각은 오늘날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영부인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검소하고 조용하지만 뚜렷한 철학과 신념을 지닌 설 여사는, 김문수 후보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이자 대한민국의 차세대 영부인상에 가까운 인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